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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

디즈니 성장 일기

디즈니 성장 일기


 


 '어떻게 우정이 이러니' 11년 지기 친구 H는 화냈다. 우린 오랫동안 소울메이트였고 심지어 가족도 H보다 날 더 잘 알지 못했다. 이런 우리 사이엔 극심한 성향 차라는 높은 벽이 있었다. H는 자발적 아싸고 나는 인싸였다. 


 세상에 희생없이 유지되는 관계가 있을까. 누구나 카톡에서 없어지지 않는 1을 보며 외로웠던 적이 있을 것이다. 때론 일방적으로, 때론 처절하게. 친구, 연인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H는 더 희생하는 쪽을 자기라고 여겼다. 11년동안 우린 세번을 크게 싸웠다. 첫째는 고등학교 진학, 둘째는 대학 진학, 셋째는 직장 진학(?)이었다. 나는 낯선 환경이면 낯선 사람들 만나러 다니길 즐겼고 친구는 낯선 환경이면 익숙한 나를 찾았다. 친구는 나와 함께 하는 순간을 지키기 위해 과외도 같이 했고 학원도 같이 다녔다. 그럼에도 나를 빼앗아간 모든 것을 질투했다. 지금보다 어렸던 난 그녀를 한동안 죄인처럼 피해다녔다. 괜시리 미안하기도 하고 미안하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우린 곧 다시 가까워졌고 싸운 사실 따위 금새 잊었다. 제대로 봉합되지 않은 상처가 터지고 터져 결국 나를 터트렸다. 몇 주 카톡방이 잠잠했다. 생각보다 홀가분했고 어딘가 허전했다. 그리고 궁금했다. 


 디즈니 공주가 행복할 조건 중 하나는 "반드시 사람하는 사람과 '함께' 행복해진다"는 점이다. 백설공주는 독사과를 먹고, 키스를 받아 깨어났고, 결혼해서 왕자랑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다. 인어공주는 가족을 등지고, 목소리도 버리고, 결혼해서 왕자랑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다. 라푼젤은 마법 머리를 잘라내고, 결혼해서 유진과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다. 그런 공주들을 보며 어렸던 난 한 가지 교훈을 새겼다. 사랑이란 누군가와 함께 함으로써 완성되는거라고. 


 랄프는 언제까지고 오락실 게임기 세상에 머물고 싶어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도 베넬로피와 함께라면 즐거웠다. 반면 베넬로피는 권태를 느낀다(참고로 둘은 철저한 우정이다). 변화는 갑자기 찾아온다. 게임기 고장으로 평화가 깨질 위기에 처하자 둘은 게임기를 고치기 위해 인터넷 세상으로 떠난다. 랄프는 낯선 세상에서 우스꽝스런 동영상, 혹독한 악플을 전부 견디며 고군분투한다. 오직 '베넬로피와의 우정'을 지킨다는 일념하에. 이 희생이 무색하게 베넬로피는 인터넷 세상에 빠져든다. 빠져드는 만큼 랄프를 피한다. 저토록 희생적인 그가 이곳에 남겠다는 말에 어떻게 반응할지 두려워하며. 평화를 지키기 위해 건너온 세상에서 평화는 깨어질 위기에 처했다. 위태로운 여정을 볼수록 난 궁금해졌다. 이 영화의 끝이. 변화는 찾아오기 마련이다. 환경이 변하면 우정도 변할까? 우정에 끝이 있을까.

 랄프는 환경의 변화가 그들의 평화도 깨고 우정도 깨버릴 것이란 두려움에 떤 나머지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랄프의 집착을 복사한 바이러스가 온도시에 퍼진다. 친구를 향한 집착을 드러낸 바이러스는 온도시를 파괴하고 베넬로피를 집어삼키기 직전에 이른다. 그걸 본 랄프는 그제야 반성하며 베넬로피를 놓아준다. 친구를 원하는 만큼 친구를 생각하는 순수함. 평화를 깨고 나가려는 자를 향한 분노와 눈 앞을 지나가는 순간을 잡으려는 처절한 노력. 더이상 같은 곳에서 함께 지내지 못한다는 아쉬움, 필연적으로 다가온 헤어짐에 대한 슬픔, 지나간 추억을 떠나보내는 아픔..나 또한 언제까지고 친구와 같은 동네에서 놀 것만 같았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누구에게나 헤어짐이 있다. 완전한 헤어짐은 아니지만 예전같지 않은 관계 또한 헤어짐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디즈니와 현실의 차이점은 환경이 변해도 유지되는 관계가 있다는 점이다. 환경이 변해도 내 옆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다. 중요한건 내가 값을 치르면서 붙잡아둔 관계란 거다. 그 값으로 누군가의 영원을 바라는 사람도 있고 그냥 감정만 바라는 사람이 있다. 둘의 성향 차는 영영 극복될 수 없는 평행선을 그리리라. 나는 그 슬픈 관계를 일찍이 깨달았다. 


 사실 지금까지 디즈니 주인공들이 헤어지는 일은 없었다. 나는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둘이 다시 만나는 장면을 기대했다. 그런 장면은 없었다.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던 둘은 정말 헤어졌다. 헤어져버렸다. 결국 디즈니는 어린이들에게 헤어짐을 선사했다. 성장한 디즈니는 언제까지고 우정과 내가 공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었다. 우정은 우정이고 나는 나다. 더이상 누군가에게 끌려다니지 않고 내 꿈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에서 디즈니는 나와 함께 성장했다.